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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남도여행 1번지 강진여행, 강진만 갈대축제가 10월 27일부터 열린다 2편

강진의 둘째날, 다행히 날씨가 쾌청해졌다. 

숙소에서 바로보는 강진만은 고즉넉한 선창가 아침을 연상시켰다. 전날에 비를 맞으며 여행을 했더니 피곤했다. 아침의 맑은 하늘을 보니 어제의 피로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다. 

숙소 앞에 아름다운 나무 두 그루가 균형을 맞추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금목서 라는 나무다. 향이 샤넬 NO.5와 비슷하다고 해서 여성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또 향이 오래 간다고 해서 만리향이라는 별칭이 있다. 좋은 향 때문인지 예전에는 선비의 나무라고 불렸다고 한다. 강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강진만의 뻘 속에 자라는 짱뚱어로 만든 갯뻘탕

강진만에서 나온 짱뚱어탕로 만든 탕을 갯벌탕이라고 해서 판매하고 있다. 갯벌을 튀어 오르면서 이동하는 짱뚱어는 힘이 좋아서 보양식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게 사장님은 "바다의 비아그라"라고 자랑했다. 짱뚱어가 동면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몸에 좋고, 비린 말이 전혀 없어 맛있게 먹었다. 추어탕, 장어탕 등과 비교했을 때 내 입맛에는 이 집의 짱뚱어탕이 제일 좋았다. 

이집에는 게젓을 반찬으로 내 놓고 있다. 아이 주먹크기의 돌게를 곱게 갈아서 껍질까지 넣어서 게젓갈을 만들었다. 전혀 비린 맛이 나지 않고 오히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토하젓은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게젓갈은 이곳에서 처음 맛본다. 

짱뚱어는 성어라고 해야 그 길이가 어른 손바닥 크기를 넘지 않을 만큼 작다. 양식을 하지 않고 홀치기 방식의 낚시로 잡는다고 한다. 짱뚱어 앞으로 낚시를 던져서 당기면 낚시바늘을 몸통에 걸어 낚는 방식이다. 그러니 잡는 양이 적어서 더 귀한 음식이 되고 있다. 


이 가게 사장님은 30년 동안 짱뚱어를 직접 낚시로 잡아 왔다고 하셨다. 처음 남자들이 여자는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렸다고 한다. 그 세월동안 짱뚱어를 잡아왔고 이제는 짱뚱어 고수가 되어 "달인"으로 불리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어렵게 짱뚱어를 잡았는가 물어 보니, 


"먹고 살기 위해 잡았지" 라며 웃는다. 



강진군의 마을을 도는 버스. 오래되었지만 이 버스가 강진 주민의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손님이 타기를 기다리는 버스를 보니 정겹다. 


강진만 갈대숲, 10월 27일부터 축제가 열려

강진만과 순천만 갈대숲 중에 누가 으뜸인가요? 강진주민은 강진 갈대가 더 좋다고 한다. 두 곳을 다녀본 사람으로서 두 곳 모두 아름다운 곳이다. 강진 갈대숲길에는 아직 생태 데크를 공사 중이다. 또, 강진만 둘레에는 자전거 도로가 눈에 보인다. 자전거로 넓은 갈대숲을 라이딩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스르르륵~~ 갈대가 바람결에 따라 춤을 춘다. 가만히 갈대의 움직임에, 일렁이는 바람을 몸으로 느껴본다. 파도처럼 멀리서 몰려오는 갈대의 춤사위를 가만히 즐겨 본다.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정보 더보기 http://gangjinfestival.com


강진의 고찰 백련사를 거쳐 다산초당으로 

강진을 알게 된 것은 1993년 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출판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통해서다. 아마도 이 책을 통해 남도문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곳에 소개된 백련사 가는 오솔길을 따라 저자가 느끼는 풍경을 발견하는 재미가 알찼다. 

지금은 백련사에서 내려 가는 길에 보였던 붉은 황톳길도 사라지고 푸른 아스팔트 길 뿐이다. 한 사람이 걸어도 좁아서 일행이 한줄로 줄줄이 걷던 백련사 가는 오솔길은 이제 나무 계단도 만들어지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벤치도 놓여 있다. 

그래도 여전히 키 높은 동백나무가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가로 막고 있다. 동백은 나무잎도 무성해서 그 아래 다른 나무는 전혀 살 수 없다고 한다. 빽빽한 동백나무숲을 질러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뵈려 간다. 참고로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를 오기보다 반대로 넘어가는 것이 조금 수월한 듯하다. 



"차례" 라는 말은 다도에서 유래되어 나온 말


백련사에서 잠시 자리를 하고 차를 마셨다. 백련사 주지 스님께서 직접 차 문화와 유래를 설명해 주셨다. 차를 마시는 것을 다행이라고 한다. 다행의 예법과 방식이 다양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인이 편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말한다. 우리가 명절에 맞이하는 차례 라는 말도 다행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즉, 예전에는 제사상에 반드시 차를 올렸기 때문에 차례라고 했다고 한다. 


다산초당에 도착했다. 

정약용 선생님은 생가가 있는 지금의 남양주에서 약 18년, 그리고 한양에서 18년, 유배지인 강진에서 18년을 살았다고 한다. 특히 목민심서 등 주요 저서가 이곳 강진에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유배지역인 강진 시골 마을에서 어떻게 주옥 같은 저서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강진이 그 당시에도 일본과 중국을 오가는 무역선의 중간 기착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물과 음식 등을 싣고 최종 목적지까지 항해를 했다고 한다. 다산선생님은 이 배들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와 서적 등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유배가 좋은 저서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