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이후, 한미간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굴욕 협상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 문제는 국민 건강과 생활을 위협하는 '건강주권'의 침해라 할 수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해 떳떳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정부의 원칙을 넘어가면서 협상을 추진한 것을 정말 상식적인 선을 넘어서는 현 정부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쇠고기 협상과 관련 네티즌 여론은 현실의 담론 구조보다 더욱 치밀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단순히 혹세무민하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한 담론이 형성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정부가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광우병에 관련된 폐쇄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급기야 한미 쇠고기 협상이 진행되면서 외국의 광우병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인터넷 등에 의해 검색이 되었고, 자신들의 관심사인 광우병 정보에 집착과 논쟁이 진행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급기야 이러한 관심은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의 자발적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표출되지 못했던 네티즌들의 분노가 1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성을 형성한 것이다.
최근, 이러한 네티즌들의 현 정부에 대한 분노와 도발은 '촛불시위'로 확산되었다. 특히,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아 정권에 대한 단죄를 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참석도 이번 시위의 새로운 모습이다. 학생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 중에, 미국 쇠고기의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학교 급식 등에 미국 쇠고기를 사용토록 하겠다는 정부 당국의 발언이 주요했다고 보여 진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면서 논란이 일었던 교육 문제 등이 교육 현장의 학생들을 더욱 자극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영어몰입식 교육 등의 혼선, 심사숙고하지 않고 언급했던 학교 자율화문제(우열반 편성 등)등이 원인이었다. 이 정도되면 누구도 거리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보는 지식인들의 편엽한 시각이 문제이다.
‘위험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막연한 불안감도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됐다. 김호기 연세대(사회학) 교수는 “광우병은 발병이 되면 어느 사람도 예외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위험으로 사회학에서 말하는 ‘위험사회’의 한 단면”이라며 “(쇠고기 유통 체계 등에) 믿음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포감이 전 사회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택수 고려대(사회학) 교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국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에 빠지고, 근거 없는 괴담도 이에 편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거 없는 소문을 유포시키는 행위를 일종의 유희로 보는 젊은층의 ‘장난기’도 시위 확산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는 인터넷을 점령한 ‘광우병 괴담’에 주목, 이번 사태를 ‘디지털 마오이즘’의 한 사례로 보기도 한다. ‘디지털 마오이즘’은 ‘가상현실’이라는 말을 만들었던 미국의 미래학자 재런 러니어가 지난 2006년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인터넷을 통한 감성적 집단주의의 위험을 극단적 좌파나 우파, 마오이즘, 나치즘 같은 집단주의 운동에 빗댄 것이다.
<인용: 한번 뭉쳐볼까? ‘감성적 집단심리’ 작용, 문화일보 기사>
문화일보 기사에서 보면, 일부 전문가라는 익명성을 통해, 이번 촛불시위 참여자를 디지털 마오이즘으로 규정하고 있다. 감성적 집단심리가 작용하고 있으며, 극단적 좌파, 나치주의자인양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기사가 집회 참여자들의 불안 요소와 참여 경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온라인의 특성상 온라인의 이슈가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과정은 쉽지 않다. 정부가 왜곡하는 것처럼 그 집회의 배후가 있다고 할지라도 연이은 많은 참석자가 자발적으로 동일한 이슈로 집회를 참석하게 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참여자들의 자발성과 이슈에 대한 관심사와 중대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광장 집회는 오프라인에 대한 의지표출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는 문화일보 기사처럼, 단순한 감성적 집단주의는 필터링되어 간다. 이미 감성적 논의와 소통은 온라인에서 충분히 이루어졌고, 이러한 정제된 의견들의 합의가 촛불시위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온라인 주도의 오프라인 행위를 감성, 자극의 돌출적 행위로 치부하지만, 그들의 정교화된 논의 과정과 합의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못하는 우매한 시각이라고 보고 싶다. 특히 문화일보 기사처럼 마오이즘과 같은 극단적 표현을 통해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단오한 대체는 참으로 어이없는 언어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 단체들의 집회의 광란에 대한 평가는 함부로 하지 못하면서,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낙인찍기 행위에 대해 기자는 다시 한번 신중한 글쓰기를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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